잘 가, 2018

  블로그 첫 글이다.

  사실 티스토리 이후로 블로그를 모두 문 닫고 정리했고, 이후에 GitHub이나 GitLab에 시도하려고 했던 스태틱 블로그들은 빌드 및 재배포 과정이 귀찮아서 결국 과거에 눈여겨둔 블로거에서 새로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다시 만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매번 머리 속에 기억해두기 너무 어려워서 이제부터라도 기록을 해두기 위함이다. 생각보다 2018년에도 많은 일을 해냈고 큰 보람도 느끼고, 상처도 받았지만 막상 2018년의 종료를 1시간 20분 가량 앞둔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잘 생각나지 않는다. LFU 캐시와 같은 것이다. 안 쓰는 자료는 뇌에서 장기 보관용 공간에 저장되고, 상시 사용하는 공간으로 로딩하려면 기억의 끈을 짚어가며 추적해야하는 상황에 빠졌다.

  2017년에 내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꼈던 프로젝트를, 강한 책임감 끝에 마무리를 지은 후에 많은 상처를 입었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했는데, 점점 말수도 줄어들고 부담은 커져서 고생을 많이 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건 주관적인 인상이고, 더 험한 환경을 경험해본 사람들에겐 그 정도쯤은 소소한 정도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필사적으로 마무리를 짓긴 했지만, 절대 출시되어선 안되는 상태의 제품을 프로덕션에 올려야만 했다. 생각보다 내 양심에 많은 상처를 주었던 일이었는데, 그 누구도 '이런 환경에선 어쩔 수 없었다. 넌 최선을 다했어' 라고 해주는 사람 없이 바로 프로덕션에 올라온 제품을 수정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혼자서 몇개월을 더 버티다가 결국 1월부터 6월까진 업무 비중을 줄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해야하는 시기를 맞이 했다.

  회복하는 기간에 스피닝(spinning)이라는 재밌는 운동을 했었다. 처음엔 다른 회원님들 따라가며 하기가 힘들었는데, 점차 근육이 붙고 체력이 늘어가니까 무척 신나고 재밌었다. 자신감이 생기며 마음의 사어도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무엇보다 업무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다시 대학생 때처럼 재밌는 프로젝트 찾아 공부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그때 Dart(
) 라는 언어도 배우고, Go 언어로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물론 그때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다시 정상 업무 일정에 복귀하기 위한 준비로 인해 거진 멈추다시피 했는데, 그래도 재밌었던 것 같다. 이 기간에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서, 단순한 기술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관리와 사람과의 소통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2017년에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스스로 문을 닫으려던 나 자신과 그걸 방관하고 성과 측정에만 힘쓰던 프로젝트 리더의 잘못도 적지 않으니까.

  그리고 5월엔 유럽 여행을 다녀왔었다. (친구와 함께 다녀와서 더 좋았지만) 그때 처음으로 패키지 여행을 이용해보았는데, 가이드 분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술에만 너무 매달려선 성공할 수 없다는 미묘한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안일한 내 생각을 다시금 일깨우는 경험도 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가이드와 현지 버스 기사와의 충돌이 있었는데, 버스 기사를 챙기면서도 때론 스무명 남짓의 자신이 책임져야할 인원이 있기 때문에 일정 진행을 위해 강하게 채찍을 휘둘렀던 모습으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어쩌면 나는 여태 너무 나이브(naive)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5월 외에도 올해는 의도하지 않게 해외를 정말 많이 다녔다. 일본만 다섯번 정도 다녀온 것 같다. 도쿄에서 일주일 살아보겠다고 7박 8일로 있다가 오기도 했고, 오키나와의 짠 바닷물 맛이 그리워 오키나와도 다녀왔었다. 그리고 군대가는 아는 동생과 도쿄도 다녀오고, 오사카도 한번 다녀왔고, 뜻이 잘 맞는 지인과 함께 홋카이도 여행도 다녀왔었다. 그리고 면허 따고 첫 운전을 홋카이도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각별한 기억이었다.

  이직 준비야 늘상 하는 것이지만, 올해는 정말 뼈 아프게 서서히 뒤쳐지는 경험을 했지만 여기에 밝히긴 너무 부끄럽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현실을 인정하고나야, 다음에 얼마나 전진할지, 어떻게 전진할지 감이 잡히긴 한다. 몸이 아파서 고생하는건 어쩔 수 없지만,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앞으로 과감히 나아가서 당당히 칼도 휘두르고 미사일도 쏘고, 가끔은 피탄도 당하는 실수를 겪으면서 더 잘 피하고 공격하는 2019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억력이 영 좋지 않으니까 글을 좀 써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양한 트러블슈팅 경험도 많았는데, 막상 기억에서 꺼내려니 잘 안 나오는 난감한 일이 많다. 나름 정말 고생했던 일이라 못 잊을 것 같았던 일도, 기록해두지 않으니 점점 사라져간다. 그나마 여행은 사진을 많이 찍어둬서 몇장만 돌려봐도, 어떤 테마로 여행을 다녀왔는지 여기가 어딘지 금방 기억해내는데 이놈의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막 잊혀진다.

  사진하니까 생각났는데, 돌피드림(Dollfie Dream, http://www.dollfiedream.tokyo/)을 들인 건 2017년 9월이고 본격적으로 인형술사 활동을 시작한 건 2018년이다. 2018년이 인형술사 활동의 원년이 된 셈이다. 그리고 첫 돌피드림인 '에밀리아' 이후로, 11월엔가 '나나오 유리코'를 들였다. 이제 두 인형 정도는 책임져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어 들였는데, 둘 다 데리고 인형 사진 찍으러 여행 다니기엔 생각보다 빡세서 지금은 한 아이씩 번갈아 가며 야외 출사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 야외 출사 덕분에 2018년에 카메라 기변만 두번째, 새 카메라를 구입한 것도 하나 있다.

  현재 사용하고있는 카메라는 SIGMA sd Quattro 와 OLYMPUS E-M1 인데 그 전에는 캐논 EOS M3 사용했었다. 렌즈 라인업이나 카메라는 지금이 더 좋아졌는데, 사진은 M3 쓸 때 더 잘 찍은 것 보면 참 미묘한 기분이 든다. 2019년에는 운전면허 취득 1주년을 맞이하여, 운전 빈도를 좀 더 올릴 겸 두 인형을 데리고 전국 곳곳으로 주말에 여행을 가게 될 것 같다. 사진은 현재 트위터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운전! 난 절대 차를 몰고 다니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2018년 와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7년 말에 뭔가 삶의 새로운 재미를 찾고자 면허를 취득했고(필기부터 도로주행까지 한번에 합격했다), 취득한 뒤에는 전동킥보드 타는 용도로 이용하긴 했는데 홋카이도에서 렌터카 이용한 이후로는 자동차 운전의 재미를 알게 되어 운전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다. 12월부터는 이제 더 많이 연습해서 장거리 인형 사진 출사 때 등과 어깨의 통증을 좀 줄여보고자 한다.

  참고로 돌피드림의 체중(?)은 옷 포함 약 1.3kg 정도인데, 여기에 카메라와 삼각대와 각종 소품과 스탠드를 챙겨 나오면 벌써 짐이 5kg 정도 된다. 거기에 내 여행짐을 따로 싸면 7kg이 넘는데, 애정으로 극복하겠지만 그래도 어떤 날에는 등도 어깨도 아프고 그래서 차가 있었으면하는 소망을 가졌었다. (지금은 인형 하나가 더 늘었으니 이제 근 10kg 정도 들고 다닐 것 같다.) 이제는 그 소망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하다. 더 멀리, 조용하고 풍경 아름다운 곳으로 가서 예쁜 사진 많이 남기고 싶다.

  2019년에는 뭘하면 좋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1. 일단은 건강 회복이 최우선이다. 배우고 싶은 무술을 배우고, 체중을 줄이자.
  2. 체중을 줄였으면 다시 코스프레에 도전을 해보자.
  3. 프로그래밍은 평생 놓을 수 없는 것.
  4. 최신의 Java를 기준으로 효율적인 작성법과 각종 특성을 잘 파악하자. 그리고 분산형 형태소 분석기와 말뭉치 사전 검색 서버를 만들어보자.
  5. Go는 제대로 다시 해보자. 목표는 http 라이브러리 없이 직접 http 서버를 소켓만으로 구현해보는 것.
  6. 작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하나 설계하고 컴파일러를 만들어보자. 이건 C#을 배우는 용도.
  7. 파이썬 스크립팅은 Flask 프레임워크와 SQL Alchemy 사용법을 마스터하기 위해, 올해 말부터 진행하던 개인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 그리고 UI가 예쁘지 않다는 피드백이 있었으니 이것도 뭔가 해보자.
  8. 운전스킬 향상. 2019년말까지 연습하여 동해안 일주를 해보자.
  9. 영어는 어휘량 증대를 위해, 기술서적이 아닌 영어책을 많이 읽어보기로.
  10. 일본어는 여행 다니는데는 지장 없는데, 혹시 렌터카로 여행 다니다가 접촉 사고 나더라도 침착하게 경찰 부르고 렌터카 회사에 일본어로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지시를 알아들 수 있게 연습하자. (역시 여행 중심으로 일본어를 공부)
  11. 꿈 꾸던 가족 캠핑을 한번 가보자.
  12. 카메라 기변증을 이제 마무리 짓자.
  13. 돌피드림 헤드를 메이크업하는 법을 배우자. 처음 들여온 돌피드림인 '에밀리아'의 메이크업이 이제 점점 약해지고 있어서 대비를 해야한다.
  14. 그리고 불안해하지 말고 즐겁게 지내자. 불안해한다고 잘못된 게 갑자기 잘되거나, 안될 일이 갑자기 잘 되진 않으니까.
  15. 그리고 이제, 일본에서 라이브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제야 좀 올해 뭘 했는지 이것저것 기억이 나는 것 같다. SNS로는 올해 감사했던 분들께 직접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감사드렸지만, 그외로도 많은 도움을 받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도 만신창이였던 나를 이끌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새해에도 좋은 일 가득하시길 기원드리며, 꼭 건강하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다.

Good bye hell 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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